예수수도회 CONGREGATIO JESU

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 홈
  • Bulletin board
  • 세상

세상

팽목항십자가 봉헌(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주님평화 작성일15-08-08 10:16 조회3,599회 댓글0건

본문

"사람만이 희망이다"

 

전종훈 신부

 

25394E3F55C4DB4B2AA384여기 팽목항에 들어와 산 지 3개월 됐습니다. 오늘처럼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희망 없는 매일 매일을 살아가다가 오늘 여러분들 뵈니까 , 역시 사람이 희망이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팽목항에 요즘 방학을 해서 가끔 단체로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정말 적막만 감도는 그런 정말 세월호 침몰과 같은, 그런 분위기가 늘 연출 됐었는데 그래서 참 안타깝고, 또 한편으로는 , 이거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이런 부정적인 생각들, 그런 생각들이 늘 상주했는데,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 보니까 희망이라는 거 그리고 십자가의 믿음처럼 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게 있긴 있는 건데, 그게 사람이구나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곳에 들어오면서 물론 외적인 요인도 있었습니다만, 저희가 용산 참사를 뼈저리게 겪었습니다. 여기 계신 신부님들 대부분 다 용산 참사 천막 안에서 함께 유가족들과 생활하였던 기억들이 새롭게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용산 참사는 저희에게 신앙의 새로운 눈을 뜨게 했고,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것인가를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갈 수 있는 커다란 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무기력한 게 인간이구나,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철저한 패배의 아픔도 함께 배웠던 것이 용산 현장이었습니다. 이곳은 세월호 현장입니다. 이곳에 아직도 저 어린 학생들의, 저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간 희생자들의 피눈물과 피 울음 소리가 맴돌고 있는 현장입니다. 용산 현장이 무너졌을 때, 현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이미 용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청 앞으로 달려가고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고 국회 앞으로 쏘다녀 봤자, 메아리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메아리조차 아니었습니다. 5.18 민주화 항쟁이 터져서, 많은 사람이 경찰의 경계망을 뚫고 망월동 묘지 참배하고, 돌아와서 광주의 실상을 알린 지 7년 만에 광주의 진상은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쉽게 진실이 밝혀질 수 없는 이유는 여러분께서 잘 아실 겁니다.

 

고단한, 아주 힘든 저 예수님의 십자가 길보다 더 어렵고, 힘든 시간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팽목항을 포기하면, 이 팽목항을 빼앗기면, 팽목항 현장이 지워지면 그것조차 다 물거품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현장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르겠지요. 그만큼 자본과 권력과 이 땅의 부도덕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도 요지부동인 세상을 보면 그것도 허망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돼 죽는 순간까지도 하느님의 희망을 놓치지 않았듯이, 저희도 그 순간이 언제일지 모르더라도 마지막까지라도 저 십자가를 부둥켜안고 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영광을 이 안에서 배우고 체험하고 함께 나누는 그런 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병수 작가가 구멍 여섯 개 난 십자가 쪼끄만 것을 들고 와서 얘기했을 때 먹먹했습니다. 그때 문득 스친 생각으로, ‘, 저 옆에 정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큰 십자가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냥 몇 마디 던진 이야기가 오늘 현실이 됐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여러분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 기도하고 묵상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그 끈이 끊기지 않는 한 반드시 저는 세월호의 진상은 낱낱이 밝혀질 것이고 그로 인해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또 그로 인해 피눈물로 얼룩진 엄마, 아빠 유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의 뜻이 이곳에 있기에 이곳이 이렇게 밝은 곳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