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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어머니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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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님평화 작성일15-03-17 13:01 조회6,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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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을 지키고 계시는 최민석 신부님의 글입니다.


유가족 어머니들의 기도

 

나는 오늘도 세월호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모셔놓은 분향소에 들어섭니다. 아침 햇살이 분향소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바람이 많지 않아 평온한 팽목항의 모습이네요. 분향소에 들어서니 유가족으로 보이는 어머니들 다섯 분이 아이들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 보는 분들이시지만 느낌으로 유가족임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분향소에 들어서는 나를 분향소를 찾는 손님으로 아시고 일어나서 목례를 표하십니다.

나도 처음 보는 분들이라 먼저 눈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유가족이시죠?”

!”

저는 이곳 팽목에 있는 신부입니다.”

 

나는 아침마다 일찍 이 곳 팽목에 도착하면 반드시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 곳을 찾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이 곳에 머물고 있는 나도 이 곳 분향소를 성전과 같은 곳이라 생각하여 이 곳에 들어 올 때마다 거룩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밀게 됩니다. 내가 매일 기도하는 기도처로 삼는 곳도 이곳입니다. 이 곳에 오면 제일 먼저 분향소에 예를 올립니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분향소는 장중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발랄하고 예쁜 아이들이 있는 편안한 교실 같은 느낌도 함께 있습니다. 누구든 이곳에 있으면 정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젖을 수밖에 없겠지만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고 방문객이 없는 시간은 이곳에서 독서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 동안 나는 이 곳 분향소에서 여러 아빠들을 만났습니다. 아빠들은 남자들이라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유가족 어머니들을 분향소에서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그 동안 단원고 1반부터 10반까지 부모님들이 오시면 대부분 아버님들이 이 분향소를 지켰기 때문에 대부분 아버님들을 이곳 분향소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하지 못한 유가족 어머님들을 만난 것이라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드리고 우리가 매일 여기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며 설명을 드리고 우리가 바치는 십자가의 길의 의미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저희와 함께 기도 하시기를 권해 드렸습니다. 긍정적인 신호를 눈빛으로 받으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도 늘 조심스럽습니다. 아주 예민한 곳이기에 말 하나, 행동하나, 신중하게 하려고 하지만 나의 말과 행동이 혹시라도 상처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이토록 행동을 조심한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걸음걸이도 웃는 것도 담소를 나누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 곳 팽목에 온 첫 날 처음이라 분위기를 잘 풀어보려 애를 써 보았습니다. 앞으로 서로의 신뢰를 위해 가벼운 유머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위해 가볍게 술도 한두 잔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좋지 않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내 귀에 들려오는 소문은 신부가 술도 한다.”며 이러저러 한 이야기가 하는 것을 보니 점잔하지 못한 얼치기 신부 정도로 보신 모양입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많이 친밀해 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늘 예민한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를 잘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예민한 분들을 조심해야 하는 쪽은 늘 내 쪽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배려와 위로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늘 배려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머니들에게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서 기도를 제안합니다.

 

어머니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려 합니다.”

기도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기도해도 좋다는 응답을 눈빛으로 받습니다.

 

늘 기도하는 책이라며 기도서를 어머니들에게 드렸더니 받으시고 읽어 보십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십자가의 길 기도를 늘 하듯이 그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1처는 내가 읽고 묵상하고, 2처는 나와 함께 하시는 선생님이 이어서 기도를 바칩니다. 그 다음은 3처부터는 자연스럽게 유가족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3처 기도문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슬픔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416일 사고 현장의 순간으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여기저기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서러움의 눈물이 터져 버린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잘 못한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괜히 기도하자고 제안한 것 같아서 미안하고 송구스럽습니다. 폭발하는 슬픔을 참아가는 어머니들을 보는 나도 고통스럽습니다. 그 가슴 찟어 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꿈 많은 아이들의 수학여행 길에서부터 배가 기울어 가던 상황 그리고 기다리고 버티고 무섭고 두렵던 아이들의 상황 하나하나를 느끼며 아이들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울부짓는 기도를 계속 드립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믿었던 아이들, 성한 것 없는 오래된 구명조끼를 서로 입혀 주며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간 슬픔과 분노가 다시 터진 것입니다. 그 모습은 처절한 기도를 넘어 절망과 좌절로 또 한편으로는 분노가 기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무방비로 쓰러지는 순간에 엄마 아빠에게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날리는 순간을 생각하면서는 오열의 기도를 바칩니다. 여기저기서 오열을 참아가는 모습이 처절한 기도를 바칩니다. 아이들의 생사의 갈림길에 부모들은 자식의 고통 앞에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어머니들의 처절한 모습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당신은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어머니들을 기도를 마치시고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너무도 참기 힘든 고통의 기도를 바치신 어머니들은 다시 아이를 가슴에 묻고는 방으로 돌아가십니다.

기도를 권한 내가 어머님들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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