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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지혜와 지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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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3-09-16 12:12 조회1,8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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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지문에 대하여
[임의진의 시편 읽기 - 19장]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줍니다.
낮은 낮에게 그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그 일을 알려줍니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구석구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갑니다.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쳐주시니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신나게 치닫는 용사와 같이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고 그 뜨거움을 벗어날 자 없사옵니다.
야훼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야훼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준다.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준다.
야훼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금보다, 순금덩이보다 더 좋고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욱 달다.
당신 종이 그 말씀으로 깨우침 받고 그대로 살면 후한 상을 받겠거늘
뉘 있어 제 허물을 다 알리이까? 모르고 짓는 죄일랑 말끔히 씻어주소서.
일부러 범죄할까, 이 몸 막아주시고
그 손아귀에 잡힐까, 날 지켜주소서.
그제야 이 몸은 대역죄 씻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리이다.
내 바위, 내 구원자이신 야훼여,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임의진
해를 위하여 친 장막, 은하 우주. 해의 밝음과 뜨거움을 피할 자가 누가 있으랴. 이러한 하늘과 별의 이치, 그 정연한 법도, 그 뚜렷한 질서. 인생 지나도록 이를 지으신 하느님을 다만 찬미할 따름이다. 우리의 미련함과 무지, 수많은 죄를 용서하실 분은 하느님이지 이런저런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서로 정죄하고 외면하지 말 것.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무던히 노력할 것…. 내가 혹여 모르고 지은 죄라도 있다면 주님이 용서해 주시기를 날마다 기도할것….
 
주님의 마음에 찬 사람이어야 참사람이요 참자유인 아니겠는가. 세상의 법이 아니라 주님의 법을 따르고, 세상의 눈치가 아니라 주님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제국과 체제에 순응함이 아닌 하느님 나라를 목 놓아 외칠 때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알아차릴 것. 그대는 세상의 사람인가, 그리스도의 사람인가. 세상 권력의 주구인가, 하느님 나라의 일꾼인가.
 
 
히브리어 ‘마쓰킬’, 지혜로운 자라는 뜻이렷다. 지혜자는 옳고 그름을 깨달아 아는 사람이다. 지혜자는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이고, 그러니 하는 일마다 떳떳하고 옳은 일 뿐이다. 가장 옳은 길, 옳은 일이란 역시 하느님을 경외하는 길이요 일일 터. ‘호크마’는 지혜롭다는 하캄에서 온 말로 지혜 그 자체를 일컬음이다. 호크마를 가슴에 품은 자는 지혜를 말하는 사람. 이때는 ‘학모니’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 지혜를 전하는 사람…. 사막의 사람들에게 지혜란 얼마나 귀중한 무엇이던가. 한모금의 물보다도 귀한 지혜, 목숨과 관계되어 있고, 희망과 관계되어 있는 이 지혜….
 
지혜는 야훼의 법이요 야훼의 말씀. 금보다 귀하고 꿀보다 달디 단 게 지혜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면 사람의 눈은 어둠 가운데서 밝아진다. 눈이 밝아진 사람은 참 자유를 얻게 된다. 우리는 자유롭게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무한테도 종살이를 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은 왜 우리더러 자유를 얻을 것이라 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노예가 아닌 아들이 되면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아들이 너희에게 자유를 주듯 너희도 아들이 되면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요한 8,33-36). 지혜를 갖게 되면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자유롭게 된다. 자유인은 사막에서도 길을 찾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한 복음 20장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라뽀니!” 스승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누가 참 주인인지, 누가 목자인지, 누가 부활의 첫새벽인지, 어디로 가야 구원이 있는지 알아채는 마음, 그것이 바로 참 자유를 가진 사람의 지혜이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가. 누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고 있나. 누구에게 갈 길을 물으며, 누구의 공로와 피의 헌신을 앞세워 기도하는가. 정녕 우리 주님 예수이기를…. 정녕 우리 주님의 인연들이기를…. 나아가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제자들과 수많은 성자, 성인들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하며 살아야 하리라.
 
어떤 시인은 ‘습관적으로 희망하고 반복적으로 절망한다’고 하더라. 그것이 정녕 인생살이인지 모른다. 하지만 주님의 법도를 따라 살아가면 절망조차도 꼬막이나 바지락이 숨어있는 뻘밭마냥 예상치 못한 지혜를 얻게 되는 축복의 장으로 변할 터.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녔다는 불가의 가르침은 틀림없는 말씀이다. 아니, 모든 중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과 처지와 이치들이 저마다 불성, 신성을 노래한다. 달의 표면처럼 울퉁불퉁한 세월을 걸어가는 그대여. 오로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걸어가기를. 참 자유의 가슴을 열고 정녕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야훼 주님의 사랑과 해방을 노래하기를….
 
수도자 에르네스또 까르디날은 노래했다. 세상의 모든 자연 삼라만상에는 하느님의 지문이 찍혀 있다고…. 내 바위, 내 구원자. 바위 뒤에 숨어본 사람은 안다. 부모님 뒤에, 선생님 뒤에, 주님 뒤에. 듬직한 바위를 보아도 주님을 노래할 수 있는 마음. 뿌리처럼 엉킨 덩굴들에서 지금의 내 심정을 반추할 수 있음이다. 얽혀있는 내 마음을 풀어줄 이 누구신가. 기도하게 되는 것. 산책하다 만나는 모든 사물, 모든 자연 앞에서 하느님의 지문을 본다. 대화를 청하시는 하느님. 그분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가 수도원에서 죽어라 기도하고 걸어 나오며 투덜투덜 그랬단다. “도대체 왜 저에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하느님이 뒤통수에 대고 그러셨다. “야, 이 친구야. 자기 혼잣말만 죽 늘어놓고 내가 이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일어나 버렸잖아.”
가끔 우리는 고요하게 걸으며 별이 총총한 하늘을 우러러야 한다. 나무를 안아보아야 한다. 풀 한포기 만져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영광과 솜씨들을 알 수 있는 대자연 속에 깃들어야 한다. 나는 숲 냄새, 흙 내음이 나지 않는 사람의 장황한 이야기와 행동을 좀체 신뢰하기 어렵더라. 길 없는 황무지, 도회지의 등불 켜진 골목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란 정말 어렵다. 하느님의 지문을 만지기란 정말 어렵다. 자연의 사람이 되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라.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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