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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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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01-05 16:36 조회2,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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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란 누구인가
[슬픈 예수] 마태오복음 해설 -135
 
 
 
“29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여러분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 떠들어 댑니다. 31 이것은 여러분이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입니다. 32 그러나 여러분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시오. 이 뱀 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 여러분이 지옥의 형벌을 어떻게 피하겠습니까?”(마태오 23,29-33)
 
예언자들과 의인들의 무덤과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헤로데 대왕 때부터 시작되었다. 예수 시대에 그런 무덤은 적지 않았다. 개신교 성서학자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갈릴래아, 사마리아, 유다 지역에 그런 무덤이 39개 있고 대부분 유다 지역에 있다고 보고하였다.(느헤미아 3,16; 사도행전 2,29 참조) 그런 무덤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음을 오늘 단락은 전제한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런 무덤을 세웠다는 기록은 유다교 문헌에 전혀 없다. ‘의인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지 말라. 그들의 말씀이 그들의 비석이다’는 말을 2세기 랍비 시몬 벤 감미엘은 전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와 선조들의 부끄러운 행위를 모른 척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민족의 역사뿐 아니라 교회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면 32절 말씀처럼 우리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일제시대에 친일 행위를 저지른 노기남 대주교 같은 종교인을 가톨릭은 언제까지 감쌀 셈인가. 순교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기리지만 우리가 순교를 꺼린다면 어떻게 되나. 오늘의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서 지난날 순교자를 추앙하는 것은 순교 마케팅에 불과하다. 우리가 순교의 삶을 살아야 지난날 순교자를 제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활동 초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산상수훈이라는 희망을 예수는 선사하였다. 그러나 죽기 직전 예수는 동족 지배층을 저주하는 말씀을 남기고 있다. 8가지 희망의 말씀에 7가지 저주가 대조된다. 새는 죽기 전에 그 소리가 슬프고 죽기 전에 사람은 그 말이 착하다 하지 않은가. 예수는 자기 활동을 결국 비관적으로 보는 것인가. 예수의 삶을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성서번역이 되지 않고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던 15세기까지 마태오 23장의 저주는 그리스도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미사에서 낭독되지도 않아서 신자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성서해설에서도 유다인을 공격할 때에도 별로 인용되지 않았다. 2세기 오리게네스(Origenes) 이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욕심이 많고 돈을 밝힌다는 오해가 교회에 자리잡긴 하였다. 오랫동안 유럽 전역에서 반(反)유다주의가 퍼졌으나 마태오 23장이 그 근거로 크게 인용되지는 않았다. 마태오 23,23 십일조 부분을 인용하여 유다인의 돈 욕심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루터 이후 18세기까지 지속된 개신교의 십일조 관행을 변호하기 위해 개신교에서 같은 구절이 인용되기도 하였다. “십일조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소수파인 마태오 공동체가 자신의 터전이던 바리사이를 비판한 것처럼, 루터 시대에 소수파인 개신교는 자신의 터전인 가톨릭을 공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태오가 바리사이를 대하는 처지는 개신교가 가톨릭을 대하는 처지와 비슷하였다. 루터 이후 개신교 성서해설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구원을 행업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가톨릭은 루터에게 바리사이와 동일시되었다. 오늘도 그렇게 알거나 가르치는 개신교 형제자매들이 드물지 않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자신을 세우기 위해 남을 비난하는 행위는 주도권 다툼에서 흔하다. 특히 형제 사이의 다툼은 예상보다 더 심각해지기 쉽다. 초대교회가 로마에 저항하기보다 유다교를 비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16세기부터 인쇄술과 성서번역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읽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태오 23장(그리고 루가 18,9-14)의 내용을 빌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는 위선자로 비유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위선자로 동일시되었다. 바리사이는 유럽 전역에서 일상용어가 되었다. 독일어에서 바리사이 커피라는 단어도 생겼다. 커피에 술을 타면 커피 위에 거품이 생기는데 그러면 어떤 맛인지 알기 어렵다. 바리사이는 어느덧 ‘되기 싫은 사람, 보기 싫은 사람, 미운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스피노자(Spinoza) 이후 계몽주의 시대에 바리사이는 부정적인 뜻으로 유럽에서 자리잡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유럽 유다교에서는 바리사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가다듬었다. 그들에게 사두가이는 근본주의자를, 바리사이는 개혁파를 가리키게 되었다.
 
바리사이는 그리스도교에서 오늘도 가장 흔히 쓰이는 언어폭력의 대명사다. 성서신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런 잘못된 언어폭력을 그리스도교는 계속할 셈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양심과 정신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겠다. 유다인에 대한 박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저지른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마태오 23장은 이제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고 있다. 성서학자들도 감히 언급하기 꺼려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다. 그리스도교는 오늘 어떻게 해야 하나.
 
1. 마태오 23장을 잘못 해석하여 유다인에게 끼친 피해와 아픔을 숨기지 말고 신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역사를 잊는다고 역사가 사라지진 않는다. 2. 설교자들은 바리사이라는 단어를 쓸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가능하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3.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에 대한 비판으로 먹고 살면 안 된다. 유다교 바로알기 운동이라도 그리스도교에서 일어나야 한다. 유다교를 공정하게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마태오처럼 분별없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를 공격하면 안 된다. 유다교에 대한 마태오의 적개심을 오늘 그리스도 신자들이 상속받을 이유나 필요는 없다. 우리가 마태오를 뛰어넘기를 마태오 자신도 간절히 바랄 것이다.
 
[참고]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마카베오 이전 시기에 율법학자에 대한 중요한 두 문헌은 에스라(Esra) 7과 시락(Sirach) 37 이다. 에즈라는 성전과 사제와 연결되었고 율법연구와 가르침이 주요한 임무였다. 벤 시라(Ben Sira) 역시 성전과 관계되었지만 정치에도 관여하였고 사회적으로 명망을 누렸다. 공통년 이전 3-2세기에 시리아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투쟁하던 마카베오 왕조시대에 다양한 분파의 율법학자들이 나타났다. 성전과 왕정에 대한 태도에 따라 하시딤, 에세느, 사두가이, 바리사이파가 생겼다. 하시딤, 바리사이, 사두가이, 에세느 그리고 젤로데파에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성전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사두가이, 외딴 곳에서 단체생활하던 에세느보다 바리사이파에게 율법학자는 더 중요하였다. 바리사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공통년(서기) 70년에 로마에 대한 독립전쟁에서 패배한 유다민족에게 유일하게 바리사이파만 살아남았다. 예수 죽음 후 40년이 지난 시점이다. 공통년 35년 무렵부터 약 30여년을 선교활동하던 바울은 유다교 여러 분파가 존재하던 시절을 살았다. 바울과 다르게 4복음서 저자들은 바리사이만 생존한 유다교가 존재하던 시대를 살았다. 성전파괴 후 유다교에게 남은 것은 율법뿐이었다. 성전이 없어지니 사제들의 권력은 사라졌다.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해석하는 율법학자들이 유다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율법학자들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에는 많은 의견일치가 있다. 그러나 바리사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 차이가 적지 않다. 바리사이(파리사이오스, parisaios)가 무슨 뜻인지, 그들이 스스로 그렇게 자칭했는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우리가 바리사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대부분 막스 베버(Max Weber)에게 온 것이다. 베버(Weber)에 따르면 바리사이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 그룹으로 도시에 거주하며 제사나 계시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율법을 중시한다. 그러나 현대의 유다교 학자들에 의해 이런 개념은 흔들리고 있다. 바리사이는 식탁 예절과 십일조를 중시한 사람들이었고 유다교에서 주도 세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리사이에 대해 우리가 가진 자료는 에세느파가 남긴 쿰란(Qumran) 문헌,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가 남긴 역사서, 신약성서, 랍비 문헌 네가지다. 요세푸스의 기록은 마르코와 마태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랍비 문헌도 요세푸스의 주장과 크게 다르다. 70년 이전의 바리사이에 대한 공통된 주장을 얻기에는 쉽지 않다. 학계에서는 요세푸스의 의견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바리사이에 대해 학자들은 어떤 점에서 일치하는가. 1. 바리사이는 공통년 70년 이전에 유다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2. 바리사이는 종교교육과 일상생활 성화(聖化)에 열성적인 개혁적 중도파다. 3. 바리사이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4. 바리사이는 조상들의 전통을 중시하였다. 5. 바리사이는 모임을 통해 공동체를 이룬 조직이다.
 
마태오와 요한복음에서 바리사이에 대한 묘사는 아주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마치 바리사이들이 예수 처형에 가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마태오 27,62; 요한 18,3) 루가복음에 바리사이에 대해 호의적인 보도가(루가 7,36-; 11,37-; 13,31-; 사도행전 5,34)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이다.(루가 16,14)
마태오복음에는 바리사이와 마태오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분열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잇다. 분열의 당사자요 목격자인 마태오는 유다교와 분열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 아픔과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다. 마태오복음은 분열의 당사자가 쓴 분열의 기록이다. 그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 마태오 공동체와 바리사이 사이의 갈등은 심했다. 2. 마태오 공동체와 바리사이 사이의 공통점은 많았다. 둘 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고 일상생활의 거룩함을 위해 애썼다. 바리사이와 마태오 공동체의 다툼은 낯선 사람들끼리의 대결이 아니라 형제 사이의 다툼이다. 형제 사이의 다툼이니 그리 심하게 다툰 것이다. 유다교를 보는 마태오의 심정과 지금 우리의 심정은 물론 같지 않다.
 
예수는 유다교 여러 그룹 중에서 바리사이파에 가장 가깝다. 예수는 바리사이 보수파인 샴마이(Shammaj) 학파보다 개혁파인 힐렐(Hillel) 학파에 더 가깝다. 그러나 예수는 바리사이파에 가담하지 않았다. 예수는 유다교 분파 중 어느 한 곳을 택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었다. 유다교 어느 분파도 가난한 사람을 환영하지 않았다. 예수 그룹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 그룹의 핵심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핵심을 이룬다는 것이 예수 그룹의 특징이다. 오늘 그리스도교에도 그러한가. 예수 운동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핵심이었는데 오늘 그리스도교에는 성직자가 핵심이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에 대한 학문적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을 대하는 오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태도다. 바리사이를 위선자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설교자들 중에도 그런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바리사이 바로알기 운동이라도 생겨야 할 판이다. 다른 사람을 속여도 안되지만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도 큰 잘못이다. 우리끼리 잘 뭉치기 위해 남을 공격할 필요는 없다. 못난 사람은 남을 공격해서 뿌듯함을 느끼지만 잘난 사람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산다. 그리스도교가 유다교를 심하게 비난해온 배경에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에 느끼는 열등감이 있다.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바리사이에 대한 공정한 가르침을 교회 안에서 받은 적이 없다. 설교자들은 신자들에게 바리사이에 대해 공정하게 가르친 적 있는가. 모두 반성할 일이다.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에 저지르는 잘못을 하느님이 보고 계신다. 우리가 예수에게 충실하고 만족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진리가 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유다교는 그리스도교보다 먼저 하느님께 사랑받았다. 유다인에게 맺은 하느님의 약속은 취소되지 않는다.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유다교는 그리스도교에게 전해 주었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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