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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열두 지파,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레아와 라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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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04-16 14:58 조회4,3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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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지파,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레아와 라헬
예수수도회 김연희 글라라 수녀(예수수도회 교육센터)
 
라반에게 항의하는 야곱
 

캡션 : 라반에게 항의하는 야곱, 1627, 캔버스유화, 국립미술관, 런던
 

테르브룩헨(Hendrick Terbrugghen 1588~1629)의 작품에 라반에게 항의하는 야곱에 대한 대표적인 성화가 두 편이 있다.
그 중에 하나인 이 그림에서 인상적인 것은 이야기의 배경처럼, 조연으로 등장하는 레아와 라헬의 모습이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은 야곱이 아버지에게 항의하는 것을 레아가 시치미 떼며 듣고 있고,
화면 왼쪽에는 라헬이 엿듣고 있듯이 장면을 훔쳐보고 있다.
야곱과 라반의 손가락 움직임이 두 사람의 대화의 내용을 잘 살리고 있다.
 
 
어떤 문화에서든지 수는 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운의 의미로 ‘7’를 선호한다거나 유독 ‘4’(의 동음에서)를 불길한 숫자로 여깁니다. 시간과 공간을 지닌 이 세계는 과연 수에 따라 분류되고 질서가 유지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 안에서 사용했던 각 수의 상징성과 의미를 아는 것도 성경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듣는 데에 아주 중요합니다.1)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수는 일곱입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행운을 뜻하지 않고 완성을 나타냅니다(창세 2,3 참조). 간혹 하나가 모자라거나 하나가 남더라도 갖출 것이 다 갖추어져 있으면 일곱이라고 표현합니다(마르 8,5-10;마태 18,21-22 등 그 외 많은 예를 참조).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열둘이 특별히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 열둘 지파의 시조가 된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부터 예수님이 친히 뽑으신 열두 사도에 이르러 그 의미가 더 강조되고, 요한 묵시록에서는 새 이스라엘을 열둘이라는 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묵시 21,12-21참조). 이렇게 이스라엘을 상징했던 열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제일 먼저 알려주는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축복이라는 핵심 주제로 엮어진 이스라엘 성조 야곱의 이야기(창세 29~36장 참조)는 야곱과 에사우의 설화와 야곱과 라반의 설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심에 레아와 라헬의 설화(창세 29,31~30,24; 35,16~20 참조)가 끼어있습니다. 여기에는 소박하고 흥미 있는 문체로 남녀의 사랑과 혼인, 자녀출산과 재산 소유권에 대한 갈등과 긴장 관계 등 유목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가정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정과는 반대 방향으로, 고향과 부모인 이사악과 레베카를 떠나 하란에 도착한 야곱은 우물가에서 라헬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되고, 재산이 없는 야곱은 그를 신부로 맞아들이기 위해 결코 짧지 않은 칠 년간의 노동의 대가를 치룹니다. 그러나 라반에게 속아서 미모를 지닌 라헬에 비교되는 생기 없는 눈을 지닌(29,17) 큰딸 레아와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칠 년의 노동을 추가하지만, 그에 대한 사랑의 강도가 큰 나머지 야곱에게는 칠 년이 며칠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29,20 참조). 이스라엘에서는 한 남자가 같은 자매에게 동시에 장가들 수 없습니다(레위 18,18 참조). 그래서 이런 결혼은 실제로 일어나기 어렵지만, 성경 저자는 이방 풍습을 따라야 했던 야곱의 이중 결혼에 대해 그 어떤 윤리적 평가도 내리지 않습니다.
 
이제 레아와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개입이 제시됩니다. “주님께서는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29,31)고 야훼계 저자는 약자의 편을 드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라헬과 레아의 경쟁심과 질투심은 그들과 그들의 몸종 빌하와 질파에게서 낳은 자식들에게 붙인 이름에서 분명하게 반영됩니다. 이렇게 자식들의 이름은 모두 그 당시 어머니의 상황에 맞추어져 지어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점은 이스라엘을 형성한 열두 지파의 이름이 각 지파의 특성이나 장래의 운명(창세 49야곱의 축복참조)과는 상관없이, 여기서는 그 당시 어머니의 심경만을 반영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주석학적 연구에 대해서는 아래의 참고서적2)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자매의 갈등으로 드러난 현실 문제들은 주님의 역사하심으로써 차츰 해결되고 질서가 잡힙니다. 카인과 아벨의 갈등과는 달리 레아와 라헬의 갈등은 새로운 삶의 길을 떠나는 일에 있어서 아름다운 협력 관계를 나타냅니다. 야곱이 주님의 지시에 따라 귀향을 서두르는 일에 흔쾌히 한 목소리로 동의합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께 분부하신대로 다 하십시오(31,14-16). 이렇게 그들은 연대감을 가지고 아버지 라반의 생활태도와 속임수를 비판하기에 이르고, 시어머니 레베카처럼 라반을 떠나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만을 따르게 됩니다. 이제 그들의 삼각관계는 삼위일체적 공동 운명체로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 된 민족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하여 훗날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혼인하는 자손들에게 둘이서 함께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4,11 참조)이라는 축복의 기도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로 얽혀져 있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나타난 크나큰 손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극심한 경쟁관계 안에서도 신앙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빛입니다. 하늘을 향한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결국에는 각자의 욕심과 질투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축복(선물)에 대해 감사드릴 수 있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봅니다. 더 나아가서는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닌 우리가 함께 일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에,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시고 늘 보살펴주시는 친밀하신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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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셸 크리스티안스 지음, 장익 옮김, 성서의 상징, 분도출판사, 35-64쪽 참조.
2) 이경숙 지음, 구약성서의 여성들, 대한기독교서회, 1994, 21-3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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