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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일곱 아들의 순교를 지켜본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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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06-19 11:43 조회2,8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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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아들의 순교를 지켜본 어머니
 김연희 글라라 수녀(예수수도회 교육센터)
 
 
Pietà (The Lamentation of Christ)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이 땅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순교 160주년을 맞이하여 각 교구별 순교신심 행사가 이어집니다. 1846916(음력 726)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기 한 달 보름여전에 스승이며 동료인 신부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 옥중서한1)  이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애절한 심정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편지에는 체포 경위와 박해상황, 조선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프랑스 영사가 조선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특히 편지 끝 부분에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 잘 있게.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 우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라고 동료 최양업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페레올 주교에게 보낸 마지막 서한에서도 슬퍼할 어머니를 위로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있어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하고 말씀하셨던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입니다
 
 
이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기원전 175-164)에 의한 극심한 박해에 대해 알려주는 제2경전 마카베오기 하권에 순교자에 대한 두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아자르의 순교(2 마카 6,18-31 참조)는 그의 증언과 이야기의 결론에서와 같이,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습니다.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2 마카 7장 참조)의 본보기도 유다인의 설교에서 자주 이용되었고 그들에 대한 공경이 시대에 따라 더 뜻 깊게 전해졌습니다.
 
390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은 안티오키아에서 일곱 순교자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도시 부근의 성소에 보존된 그들의 유해를 언급했습니다. 10세기에는 한 아랍인 성지안내자가 몇 세기 전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강론 중에 언급한 마카베오 성인들의 대성당의 지하 경당에 엘아자르, 일곱 형제와 그 어머니의 무덤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은 서방 교회로 전해졌고 유럽의 여러 도시에 그들의 유해를 모시는 기념성당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2)
 
사실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일곱 형제와 그의 어머니의 이름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순교의 장소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킨 율법과 신앙의 모범은(1마카 1,62-63 참조)구전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여겨지고 결국 순교자 공경으로 자리를 굳혀갔습니다. ‘신앙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순교는 그 후손들이 순교자들을 현양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들의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며, 그 역사 안에 새로 태어납니다. 신앙 후예들은 순교자들의 승리를 경축하고 전구하면서 순교자들의 모범을 본받기를 노력해야 합니다(2 코린 2,14 참조).
 
성경 본문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오직 굳건한 믿음으로 아들들을 격려할 뿐이었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그 어머니가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고 칭송하면서 특별히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음을 밝힙니다(7,20 참조).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에게까지 권고하는 그의 말들을 통하여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확고한 뿌리와 신앙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희망하는 어머니의 간절함은 단순히 생명을 되찾는 의미를 넘어서서 식민지의 억압과 잔인한 폭군의 박해에서 이스라엘의 회복된 모습을 새롭게 찾는다는 지극한 신뢰가 담겨있습니다. 주님께로 향한 신뢰와 희망이 온갖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꺼이 죽음까지 맞이할 수 있는 순교의 귀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모님은 외아들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셨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함께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아들의 주검 앞에서 몸부림치는 이 어머니의 모습보다 더 애처로운 장면이 있을까요? 시메온의 예언처럼 성모님의 통고는 영혼과 마음을 갈라놓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간 창과 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요? (루카 2,34-35 참조) 성모님이 이 같은 고통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도 모두 이해해 주시고 그것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십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기념하며 그분의 전구를 비는 날을 십자가 현양 축일(914) 다음 날로 정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은 김대건 성인의 순교일입니다. 그분의 천상 탄일天上誕日16일에 김대건 신부의 축일을 지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임을 덧붙여 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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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40cm 크기 한지 앞뒷면에 붓으로 쓴 김 신부의 서한 원본을 당시 홍콩에서 전해 받은 최양업 신부(당시 부제)는 이를 철필로 깨끗이 정리, 원본과 함께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전달했고 지금은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서고에 소장하고 있다. 두 신부의 우애를 본받아 한국사제단의 형제애를 돈독히 다져나가자는 취지에서 서한의 라틴어 원본과 필사본이 사제성화의 날인 지난 627일에 처음으로 나란히 공개되었다.
2) 태현 역,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편찬, 마카베오 상-구약성서 새번역 18, 입문 18-19쪽 참조.
3) 김대건 성인 축일 바로잡고 순교신심 본받자최석우 신부, 2006.2.26, 평화신문, 기획특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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