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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랑의 불꽃 지닌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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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4-12-30 10:06 조회2,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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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꽃 지닌 처녀들
 예수수도회 김연희 클라라 수녀(예수수도회 교육센터)
 
 
캡션 :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 수채화, 테트 미술관, 런던, 영국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화가이자 시인으로서 신화와 상징들을 자신만의 환상과 고유한 영적세계로 펼쳐보였다. 이 그림은 성경 속의 비유를 설명해내지 않고 근본의 상징으로 다시 되돌려 놓고 있다. 먹구름이 깔린 어둑한 밤을 배경으로 화면 위에 가로로 펼쳐진 나팔 부는 천사는 종말의 때를 알리고 있다. 양쪽에 전개된 처녀들의 이미지는 중세 선악의 이분법적인 개념을 주도한다. 질서정연한 여인들과 혼란과 절망 속에 울부짖는 여인들의 대비에서 천당과 지옥, 선과 악을 연상하게 하며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못한 자의 심판이 내려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사랑의 계명을 잘 알아들으려면, 예수님의 설교 중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유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깊은 의미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긴 비유는 듣는 이의 마음속에 오래 담겨져 그 시기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다가오고, 그 강렬한 메시지는 새로운 삶을 향하여 도전하게 합니다. 내적 통찰력을 얻게 된 자는 자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가장 중요하고도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선택하는 결단력을 갖게 됩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열 처녀의 비유(마태25,1-13참조)를 들으면, 제가 신앙인으로 성숙해 가는 시기와 관련하여 그때그때 묵상의 내용과 영적 깨달음이 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때에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마태 25,1)라는 말씀은, 그 말씀을 처음으로 들었던 어린 소녀의 마음에 수도자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신랑을 제 때에 맞아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등불(부르심)과 함께 언제나 기름(응답)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주님께 향한 응답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이루어나가는 것이며, 바로 성실함이 마르지 않는 기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본래의 우의적인 특징(알레고리)으로 제 앞에 드러났을 때는,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25,13)는 표현이 뚜렷이 다가오고, 종말과 인자 내림에 관한 다른 비유처럼(마태 24,37-25,30 참조), 하늘나라에 대한 초대와 적극적인 회개의 촉구가 주요 메시지라는 가르침으로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처녀들 속에 슬그머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후였고, 자신의 다짐과는 달리 매일을 성실하게 살지 못하는 모습들을 반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황스러움과 긴장감을 느낍니다. 먼저 기름을 좀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태도입니다. 이 기름이 착한 행실과 구체적인 이웃 사랑의 실천을 가리킨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숙명적인 때이라서 어떤 이도 다른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고, 선행의 공적(기름)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본인 각자가 지니고 갈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구원을 결정짓는 종말의 축복을 위해 늘 깨어 준비하라는 명령 앞에서, 현재를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로 돌아왔습니다.
 
한편으로 저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문을 두드리는 처녀에게 그를 알지 못한다며 외면하는 신랑의 대답입니다(25,12 참조). 마지막 때에 이르러 실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난감하고 절망적일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앞서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했던 말씀들을 통해 주님, 주님!’하고 외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마태 7,21-23 참조).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 가는 것이 기름을 채우는 일이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재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수도자에게 지금 여기에서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다가오는 새로운 이해는 그 이전의 깨달음을 소멸시키지 않고 보태어져서 더 깊은 앎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고자 일생을 봉헌한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그 길을 가고 그분께서 하셨던 그 일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곧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생활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마태 20,28 참조) 자신을 비우고 낮추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필리 2,5-11 참조). 이제 열처녀의 비유에서 준비해야 하는 기름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임을 깨닫습니다. 꺼져 버리는 등불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사랑은 오직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부어 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로마 5,5 참조). 성령께서는 외적인 움직임 이전에 내면에서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차오르게 하십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 안에 담아 두어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낄 때에 그 사랑의 불씨는 언제나 타올라서 세상의 빛으로(마태 5,14 참조)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 사랑의 불꽃을 지닌 처녀들로서 신랑과 함께 천상 구원의 잔치에 참석하고 사랑의 일치를 영원히 이룰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다
   
비유 안에서 만나는 처녀들에게서, 외적으로 드러난 일에 충실하고 선행을 쌓아가는 것에 주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나, 그보다 필요한 것은 내면 깊숙이 부어주신 사랑의 영이 활발하게 작용하도록 먼저 자신을 열어 놓는 자세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향을 담은 열띤 행위보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제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제게 요구하시는 철저한 회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비움의 끊임없는 수련을 통하여 하느님의 다스림을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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