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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비가일과 다윗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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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리빛 작성일16-02-23 16:06 조회2,7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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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일과 다윗의 만남
 
예수수도회 김연희 클라라 수녀(예수수도회 교육센터)
 
 
캡션 : 다윗과 아비가일의 만남, 연도 미상, 패널에 유채, 51 x 66 cm, 개인소장
 
베트 (Wet, Jacob Willemsz de, the Elder 1610~1675)의 그림은 성경 내용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왼쪽 위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과 오른쪽에 드넓게 펼쳐진 원경이 다윗 군대와 아비가일의 종들을 둘러싸고 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작게 보이는 다윗과 아비가일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순종하는 인간의 겸손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림 중심에 있는 아비가일의 얼굴과 가슴은 빛나고, 다윗의 표정과 손짓이 이미 분노를 가라앉히고 용서와 화해의 자세로 돌아섰음을 보여 준다.
 
누군가 우리를 속상하게 하고, 하는 일을 방해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진심을 몰라준다면 어떤 마음이 일어납니까? 충분히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넉넉하게 받아들이며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불끈 달아올라 두고 보자며 억울해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언젠가 보복하겠다고 벼르기도 합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뒤를 쫓고 있는 사울에게 크나큰 관용을 보여 우리를 감동시킨 다윗에 관한 두 전승(1사무 24장과 26장 참조)사이에 끼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발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없애겠다고 전투를 선언합니다. 다윗의 격노에 찬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한 지혜로운 여인이 있었으니,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입니다(1사무 25장 참조).
 
오늘 그대를 보내시어 이렇게 만나게 해 주셨으니
다윗 등극 설화(1사무 16-2사무 5장 참조)가운데 하나로 신명기 사가가 예술적으로 편집 구성한 사무엘기 상권 24-26장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에서 다루어지는 동일한 형식과 신학적인 주제들이 다윗과 나발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집니다. (각주1)
이야기에 전개된 문제의 상황과 갈등이 절정에 이르다가 평화롭게 해결되는 실마리를 찾습니다. 인과응보 원리에 의해 불의한 자 사울(나발)은 벌을 받아 결국 죽음에 이르고, 정의로운 자 다윗은 주님께 의로운 보답을 받습니다. 상선벌악이라는 이스라엘의 전통 교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친 다윗은 부하 육백 명을 데리고 가나안 남쪽 지역에 있는 광야에서 살면서, 주변의 적들과 싸워 그 지역 사람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식량을 받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식량 요청이 정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사무엘기 상권 25장은 시작됩니다. 다윗은 많은 가축을 가진 부유한 지주 나발에게 부하를 보내 무엇이든 달라고 청하였지만 거절당합니다. 이에 다윗은 적개심에 불타 은혜도 모르는 집안 전체를 완전히 전멸시킨다고 결연한 태도로 주님께 맹세까지 하며, 즉각 나발이 사는 카르멜로 향합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으로 묘사된 아비가일(‘아비를 기쁘게 하는 자라는 뜻)은 현실에 닥친 문제와 위기를 직시하며, 지체하지 않고 집안을 구하기 위해 양식을 넉넉히 싣고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이 보이는 겸손한 태도와 지혜가 담긴 능숙한 말솜씨로 즉시 긴장 관계를 해소시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평정을 되찾고, 피의 복수를 하지 말라는 아비가일의 충고를 경청합니다. 아비가일은 정의로운 주님께서 다윗의 목숨을 생명의 보자기에 감싸주실 것이지만, 원수들의 목숨은 돌팔매처럼 팽개쳐질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슬기로운 아비가일의 충고를 들은 다윗은 주님의 섭리와 주님께 향한 온전한 의탁에 대해 귀중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는 아비가일의 예견은 미래를 내다본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등극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여 아비가일의 확신은 절정에 이릅니다(1사무 25,30-31 참조). 주님과 다윗의 관계는 단순히 인과응보적인 차원을 넘어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로 연결되었음을 잊지 않게 합니다. 그 후 나탄 예언자를 통해서도 약속된 다윗의 이영원한 왕국(2사무 7; 1역대 17장 참조), 신약에서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성취된다고(마태 1,1-17; 루카 1,68-69 참조) 암시합니다.
 
복수의 덫에 걸려 넘어질 뻔했던 성급한 다윗의 마음을 돌리게 한 침착한 아비가일에게 다윗은 오늘 그대를 보내시어 이렇게 만나게 해 주셨으니, 주 이스라엘 하느님을 찬미할 뿐이오. 오늘 내가 사람의 피를 흘리고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일을 그대가 막아 주었으니, 그대와 그대 분별력에 축복을 드리오.”(1사무 25,32-33)라고 고백합니다. 아비가일의 후덕함이 집안을 살리고 복을 가져왔습니다(잠언 31,10-31 참조).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와 보니, 나발은 임금이나 차릴만한 잔치를 벌여 술에 흠뻑 취해 있었습니다. 사려 깊은 아비가일은 날이 밝은 뒤에야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는데, 나발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돌처럼 굳어 버렸고 열흘 뒤에 숨집니다. 이 사실을 들은 다윗이 청혼을 하였고, 이를 매우 정중하고 겸허하게 수락한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됩니다. 두 정의로움의 만남이 사랑과 평화로운 조화를 이룹니다. 아비가일과 다윗은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둘 다 깊은 신앙을 지니고 민첩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서로 용서를 빌고 받아들였고,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굳게 믿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 가장 슬기로운 여인으로 존경 받았고, 다윗의 여덟 부인 가운데 하나로 다윗에게 사랑 받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인간적으로 보였던 사건들이 하느님께로 향한 진정한 만남으로 이어진 일들을 기억해봅니다. 신뢰와 희망을 나누었던 그 만남이 바로 빛 속의 만남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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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다윗의 관용과 야훼의 의로운 보답- 1사무 24-26장의 설화 비평적 연구, 이용화 ,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성서신학박사학위논문(2004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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