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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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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리빛 작성일17-12-20 10:55 조회2,9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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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와 헤로디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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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 헤로데의 축하연, 1633, 캔버스에 유채, 208 x 264 cm,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에딘버러



루벤스 (Rubens, Pieter Pauwel 1577~1640)의 작품은 인상적인 구성과 풍부한 화법으로 극적인 묘사를 하였다. 쟁반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얼굴은 마치도 살아 있는 듯 정의로움이 가득한 장엄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를 응시하는 헤로데의 두렵고 어둔 표정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조적으로 헤로디아의 당당하고 비정한 모습을 환하게 비추어 무딘 양심을 지닌 비인간성을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색채의 의상을 입은 요염한 살로메가 그림 중앙에 서있고, 탐욕스런 표정을 담은 다른 인물들은 이 폭력의 사건에 동의하듯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다소 사악한 미소를 우리에게 던지는 왼쪽의 아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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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와 헤로디아의 선택

 지금 지구촌에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폭력과 마주하게 됩니다. 폭력에는 인류 역사 이래 끊이지 않는 전쟁과 그 전쟁을 통해 자행되는 무력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탐욕스런 언론과 진실을 왜곡하는 것도 속합니다. 한편, 다행스럽게 어느 시대나 권력자들의 폭력과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그 권력에 거슬러 양심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제시된 세례자 요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전형典型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요한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도록, 즉 자신의 양심을 다시 잘 볼 수 있도록 초대합니다. 선과 악의 올바른 식별을 통해 무엇을 선택하여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루카 3,7-14 참조). 그러나 당시의 폭력 구조와 억압 속에서 요한은 바른 양심과 삶에 대한 투명성을 가르치고 살았던 이유 때문에 살해되었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마르 6,14-29; 마태 14,1-12 정독)에서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마음의 움직임을 들여다봅니다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헤로데 안티파스(각주1)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곧바로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을 떠올립니다(마르 6,14-16 참조).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여론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과 요한을 한 부류로 보아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하고, 하느님의 심판을 알릴 종말의 예언자 엘리야라고 하였고, 또 단순하게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신명 18,15.18; 요한 6,14; 사도 3,22-23 참조)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는 예수님을 요한과 동일시하는 여론에 제일 신경을 썼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양심이 요한의 일로 심한 가책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들었습니다(20).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그는 마음의 움직임과 달리 다른 행동을 선택하여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양심의 현상을 면밀히 분석하여 하느님의 존재와 관련을 지었던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은 이러한 헤로데의 마음의 움직임을 나쁜 양심의 고전적인 본보기라고 말합니다. 옳은 것은 행하고 그른 것은 피해야 한다는 의무의 감정(sense of duty)을 거슬러서 행동하는 경우에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양심의 가책입니다. 자책감, 후회, 부끄러움, 자기비판의 감정은 나쁜 양심이 보여주는 감정들입니다. 이와 반대로 좋은 양심은 좋은 감정을 동반합니다. 즉 우리가 올바로 행동한 후에 곧바로 마음이 환해지는 유쾌함, 평온한 기쁨, 해방감을 즐기게 된다고 합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처형했던 사건을 계속 떠올리며 자책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16).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19)고 합니다. 이복 형수 헤로디아와 불륜에 빠진 헤로데 안티파스에 대해 유대인들은 거세게 비난하였습니다(레위 20,21 참조). 헤로데의 선택이 옳지 않았음을 지적한 요한은 당시 민중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동시에 율법의 수호자로 나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요한의 요구를 못마땅하게 여긴 헤로디아는 가슴에 비수를 품고 눈엣가시 같은 요한을 처치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마르7,20-22)”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러한 것들은 헤로디아의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의 타락상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앙심을 품는 사람은 예외 없이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헤로디아는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딸을 시켜 매춘부가 추는 춤을 추게 했으며,(각주2) 딸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선물을 자신의 원한을 푸는 데 이용했습니다. 한 여인의 무서운 음모에 따른 선택은 즐거워야 할 향연을 공포와 폭력의 잔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비정한 여인, 헤로디아는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자신의 이기심으로 타협하고 매정함으로 억눌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죽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한 것이었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가장 영광스러운 순교자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로데의 생일잔치는 요한이 순교를 통해 천상에서 태어나는 축하연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선택이 이루어지기 전에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리는 주님의 음성(양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에 순응함으로써, 평온한 기쁨과 사랑 가득한 해방감을 지닐 수 있는 나날들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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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헤로데 집안의 족보는 가까운 친인척끼리 맺는 근친혼과 배다른 형제의 부인들과 맺는 결혼으로 매우 복잡하다. 게다가 동명이인이 많은 만큼 주의 깊게 살펴야 혼동이 없다: 성서 입문, 한님성서연구소정태현 지음, ,일과 놀이, 2000. 440-447쪽 참조.

각주2)

헤로디아와 그의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 그러나 일부 주요 수사본들에는 그의 딸 헤로디아로 되어 있다. 이런 경우, 이 소녀는 헤로데와 헤로디아 사이에 난 딸로 어머니와 똑같은 이름을 가졌던 것이 된다. 이스라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다고사>18136항에는 소녀의 이름은 살로메로 기록되어 있다. 공주가 남자 손님들 앞에서 춤추는 법은 없다. 창녀들이나 연회석상에 무희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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