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영원한 부부, 호세아와 고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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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바라기 작성일13-05-02 16:04 조회7,95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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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영원한 부부, 호세아와 고메르
김연희 클라라(대전예수수도회 교육센터)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캡션: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캔버스 유화, 개인소장>
지거 쾨더(Sieger Köder 1925- )의 이 그림에서 수직선은 그림을 밖과 안으로, 밝은 공간과 어두운 공간으로 나눈다. 집안의 젊은 여인 위쪽의 창문은 반쯤 닫힌 듯 열려 있으며, 그녀의 베일을 통해 가림과 열림을 동시에 보게 된다. 연인을 기다리는 여자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살고 있다. 남자의 작은 장미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당신도 나를 사랑합니까?” 이 질문이 이 그림의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가 2,9를 묘사한 이 그림은 신랑과 신부, 하느님과 인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도 인간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그림은 말하고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며, ‘아니, 저럴 수가?!’,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고 의아해 하며 고개를 저었던 허구의 일들이 가끔씩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한 방송의 수사 다큐 재연 프로그램에서, 성실했고 순수한 사랑을 보였던 한 청년과 상습 도박꾼이던 한 이혼녀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1) 시청자들은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속임을 두 번씩이나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라든가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배신한 여자는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해요.”라는 격한 반응까지 보였습니다. 방송에 재연된 사건을 보면서 ‘만일 호세아와 고메르의 결혼과 재결합을 하나의 기삿거리로 삼는다면, 현대의 네티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며, 그들의 가정사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아내로 삼으리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 호세아는 주님으로부터 창녀(직역하면 ‘창녀 짓의 여자’)와 결혼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호세아서 첫 장에서부터 3장까지는 이러한 호세아의 혼인 생활과 연관된 하느님의 신탁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호세아와 고메르의 개인 신상 대해서는 자세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단지 브에리의 아들인 호세아가 디블라임의 딸 고메르를 아내로 맞이한 사실만을 알려줍니다.
얼마 동안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행복하였고, 세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들에게 주어진 이름들은 이스라엘과 연관된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고메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질렀고, 호세아는 자신을 떠난 아내를 은 열다섯 세켈과 보리 한 호메르와 한 레텍으로2) 사서 데려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재결합에 이어 준수되어야 하는 성적인 절제의 시기가 강조됩니다(호세 3,3 참조).
옛 주석가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한 예언자에게 창녀와 결혼 할 것을, 또한 간음한 여자와 재결합할 것을 원하시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며 윤리적 반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와 고메르의 결혼은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일이거나 환상이나 꿈에서 이루어졌으며,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비유일 뿐이라는 설명이 생겨났습니다.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의 본디 바탕이 되고 직접적인 자료가 된 것은 그의 경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건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불문하고 호세아 본인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의미를 지닌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의 대연구가인 아브라함 J. 헤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호세아는 그의 개인적인 운명이 하느님의 정념을 비치는 거울이라는 사실, 그의 슬픔이 하느님의 슬픔을 반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3) 호세아는 자신의 전 생애의 빛으로 하느님의 뜨거운 마음과 처지를 내면 깊숙한 곳까지 비춰보았을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호소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사랑(hesed)이며, 불살라 바치는 제물보다는 하느님께 대한 앎(daath elohim)이기 때문이다”(호세 6,6 필자 역).
사랑의 예언자는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자신의 사랑의 체험으로 밝혀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배필, 영원한 아내가 됩니다(호세 2,21-22 참조). 호세아의 선포는 유다이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이사 54,4-8; 62,4-5; 에제 16장과 23장 참조). 그리고 《아가》의 전통적인 주석을 미리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정의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일 뿐만 아니라 당신 백성에게 끝없는 사랑을 쏟아주시는 자애의 하느님이시고, 당신의 사랑의 마음을 알기를 애타게 원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번복되는 덧없는 사랑에 회개를 촉구합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그러나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호세 6,1-3).
고메르와 같은 부류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나, 자신의 부정을 알고 회개하는 몸짓을 보이기는커녕 또다시 죄악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용서해 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요?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가해자에 대한 심판을 정의롭게 요구하고 싶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처럼 놀랍고도 어리석게 보이는 사랑의 깊이를 실제로 살아가도록, 영원하고 숭고한 사랑을 먼저 구체적인 삶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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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월 25일 MBC <현장기록형사>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건이었다.
2) ‘세켈’은 중량의 단위이면서 화폐 단위이기도 하다, 한 세켈은 약 11.5그램에 해당하고, 한 호멜은 약 400리터,
한 레텍은 약 200리터에 해당한다. (구약성경 새번역 16권 《열두 소예언서》, 34쪽, 각주 참조)
3)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지음, 이현주 옮김, 《예언자들》, 삼인, 2004, 109쪽 참조. 여기서 ‘하느님의 정념(pathos)'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의미하며, 단순한 느낌이나 피동적인 애정이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돌봄‘으로
이루어진 행위나 태도를 말한다.
** 밧세바, 어둔밤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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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빛님의 댓글
소리빛 작성일성화가 안보여요?!늘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옛글 다시 읽으니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