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수도회 CONGREGATIO JESU

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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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메리워드

생애

  • 1585년 1월 23일
  • 짜자잔!~ 오늘은 제가 태어난 날이예요! 제 이름은 메리워드. 이때는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가톨릭이 심하게 박해를 받고 있던 때였어요.
  • 세례
  • 요한나 라고 유아세례를 받았어요. 후에 견진성사 때 메리워드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죠. 아시죠? 견진성사 때 세례명을 바꿀 수 있는거~
  • 아빠소개
  • 제가 무척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아빠 마마듀크 워드 십니다. 귀족이시구요, 신앙심도 깊으신 분이세요.
  • 엄마소개
  • 우리 엄마세요. 워드 가문의 정신적인 지주라고나 할까요 저희 엄마 역시 신앙심이 무척이나 깊은 분이시랍니다.
  • 예수
  • 제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한 말이 바로 예수 라는 말입니다. 믿기시나요? 놀랍죠?
  • 플라우랜드 할머니댁
  • 5살 때 저는 할머니 댁으로 가야만 했어요. 가톨릭 신앙을 지기기 위해서 가족들이 흩어져야 했거든요.
  • 감옥에 갇힌 이들
  • 저는 할머니에게 신앙을 지키려다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끼는 닭을 그들에게 선물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실은요~ 할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였죠. 단지, 그 이유뿐이었죠. 어렸을 때 제가 뭘 알았겠어요.
  • 불이 났어요
  • 1595년 집에 아주 큰 불이 났어요. 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던지 침착하게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아빠가 구하러 오실 때까지 묵주기도를 바쳤어요. 저는 성모님과 아빠에 대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 첫 영성체 준비
  • 그 후 저는 헤어웰의 친척 아주머니 댁에 머물며 첫 영성체를 준비 했죠 드디어 16살 때 비밀리에 첫 영성체를 했답니다. 국가에서 가톨릭 신자가 되는 일을 엄하게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저는 친척집의 어느 신앙 깊은 하녀에게 수도생활에 대해 얘기를 들었답니다 저는 수도생활이 정말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고맙지만 저는 이미...
  • 귀족가문의 청년들에게 청혼이 들어오기 시작 했어요 그러나 저는 이미 예수님께 마음을 바쳤기에 모두 거절했답니다. 그러나 부모님, 친지들, 가까운 신부님도 반대 했어요 저는 그 어느 누구와도 의논할 수가 없었답니다.
  • 영적투쟁
  • 어느 날 신부님으로부터 영적투쟁이란 책을 선물 받았는데 저는 그 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고, 삶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답니다.
  • 고해성사
  • 또한 저는 고해성사를 통해서도 하느님을 향한 열망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사건
  • 고해신부님도 제가 수도원에 가는 것을 반대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고해 신부님이 런던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성작을 엎지르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어요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으신 신부님은 그 후로 제 수도성소의 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답니다.
  • 하느님이 부르신다면...
  • 몇달 후 저는 오랫동안 갈망했던 수도회 입회를 위해 도버 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죠 영국을 떠나는 발길이 무거워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 글라라 수녀원
  • 바다건너 생토메(현 프랑스땅)에 도착했고 소개받은 신부님은 저를 글라라 수녀원의 외부수녀가 되라고 하셨어요. 외부수녀(구걸하면서 식량을 얻어 공동체를 돕는) 제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하느님의 섭리임을 믿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외부수녀가 되었답니다.
  • 십자가를 지고..
  • 저는 열심히 수녀들을 위해 구걸을 하러 다니는 외부수녀가 되었답니다.
  •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면담이 있던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신부님 또한 이 생활이 저에게 맞지 않다고 하셨죠.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고 1609년 대그레고리오 성인 축일에 영국인을 위한 글라라회>를 설립해야겠다는 소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 하느님의 뜻
  • 성 아타나시오 축일에 글라라 수녀회의 수도복 허리띠를 엮는 동안에 저는 지금까지 겪은 일이 없었던 내적 조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빛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여겨졌으며 저는 다만 그것이 좋은 것이고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만을 알아차렸을 뿐입니다.
  • 다른 것
  • 하느님께서 무언가 저에게 다른 것을 원하시고 있는데 그것을 못 알아듣는 것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에 그 고통을 지닌채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영광! 영광! 영광!
  • 1609년 런던에서 기도가 막 끝났을 때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자신을 하느님 당신의 영광이 되는 길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세상 가운데에서...
  • 그 해 귀족 출신의 젊은 여성 몇 명이 저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 일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생토메에 가서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봉쇄가 아닌 세상 가운데서 봉사하는 수도생활을 하고자 했습니다.
  • 예수회와 같은 것을 택하라
  • 1611년 저는 수도회가 어떻게 설립되어야 하는지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회와 같은 것을 택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저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성을 따라야 함을 알았습니다.
  • 비밀리에..
  • 1614년 런던에도 수녀원 분원을 마련했습니다. 그 다음 해 영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매우 활발하게 지하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 병자를 돌보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방문하고, 임종하는 이들을 도와주었고, 성사를 받도록 준비시키고, 박해받는 가톨릭 사제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등등...
  • 자유, 정의, 성실
  • 1615년 모든 성인 대축일에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모든 덕을 갖춘 의로운 영혼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유, 정의, 성실이 의로운 영혼이 지닌 덕성이 저와 동료들에게 모든 선을 위한 봉사에 쓸모 있게 되도록 해 주는 마음 자세가 되었습니다.
  • 거울처럼 분명하게..
  • 이제 수도회는 영적인 방향, 곧 영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 함께하면 더 쉽고 좋아요~
  • 유럽 여기저기에 분원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수도회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 한 걸음 더 가까이 주님께..
  • 물론 많은 시련과 갈등 혼돈들이 함께 했으나 저는 그분께 다가가는 것 이외에는 어떤 행동도, 어떤 위로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자 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 바로 그곳에 계셨습니다.
  • 로마로 가자!~
  • 저는 수도회 인준을 받기 위해 알프스를 도보로 넘어 500km의 로마 순례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 교황 성하, 하느님의 뜻임을 믿어주십시오.
  •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저에게 하느님께서 적절한 때에 교회에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십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새로 선출된 교황 우르바노 8세와 주교단과 추기경들 앞에서는 무산되어 버렸습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새로운 형태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봉쇄가 아닌 활동 수도회, 교육, 중앙집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 동생 발바라 수녀의 죽음
  • 1623년 1월 로마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저의 친동생 발바라 수녀도 전염병으로세상을 떠났습니다. 1625년 제가 세운 수도회에 대한 끔찍한 중상과 비방이 영국 사제들 사이에 퍼져 교황청의 수도회 인준 논의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 하느님께 대한 신뢰
  •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을 신뢰하며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게 주신 모든 자유와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를 받아주소서. 이것이 하느님께 대한 저의 가장 큰 신뢰입니다.
  • 사랑하는 윈
  • 저는 자주 동료들과 서신왕래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윈! 이곳에서 우리 수도회에 대한 반대가 얼마나 심한지 보게 되면 놀랄 것입니다. 리에주에서도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우리 회원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답니다.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수녀님이 보내주신 돈을 아주 요긴하게 잘 쓸 것입니다.
  • 소녀들을 위한 교육
  • 1627년 저는 뮌헨으로 갔습니다. 바이에른의 왕 막시밀리안 1세는 뮌헨의 파라다이저 하우스를 수도회에 기증했습니다. 거기서 영국처녀들은 학교를 세웠고 비엔나에서도 기숙학교를 시작했습니다.
  • 로마로 향한 두 번째 순례
  • 로마에서는 저에게 어렵고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 번째로 로마를 향했습니다.
  • 하느님의 뜻을 따라.
  • 로마에 도착하자 교황께서는 저를 불러 4명의 추기경이 참석한 특별회의에서 발언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명령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수도회 계획서를 변경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여자 예수회를 해체하라!
  • 저의 활동에 시기하고 수도회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반대자들의 중상모략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그 결과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은 1628년 7월에 여자 예수회를 해체하라는 교령을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이태리의 수도회의 분원들은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 수도회 해체 칙서
  • 1630년 5월 저는 독일 뮌헨 수녀원으로 돌아갔고, 1631년 1월 13일에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수도회 해체를 명령하는 공식적인 칙서에 서명하셨습니다.
  • 앙어 수도원
  • 저는 해체 명령을 듣지 못한채 활동을 했기에 교회는 그런 저를 불순종의 혐의로 2월 7일에 체포하여 4월 18일까지 뮌헨의 앙어수도원에 감금 시켰습니다.
  • 로마로의 세 번째 순례
  • 1631년 10월 말 로마! 그 세 번째 순례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황성하, 저는 결코 이단자가 아니며 이단자였던 적도 없습니다. 교황께서는 우리도 그것을 믿습니다. 라 하시며 저를 당신의 보호 아래 두셨습니다.
  • 자, 수녀님께 가자!
  • 저와 동료들은 로마에 머물면서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 근처에서 지냈습니다. 교황께서는메리워드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 선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혹시 그들이 아직 선하지 않다면 곧 선해 질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 첫 동료 메리포인츠
  • 메리 포인츠는 '그 분은 어떤 고통 중에서도 그 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각 사람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셨으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찾아오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결 같이 관심을 갖고 대해주시는 고결하고 모범적인 분이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좋은 친구들
  • 제 생애에 반대자도 많아지만 블래즈 주교 황제 페르디난드 2세, 막시밀리안 왕과 왕후, 제라드 신부와 같이 돕고 지지했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수도회 계획서에 '수도회는 특별히 은인들의 생존시에는 물론이고, 은인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감사와 사랑의 유대로 연결되어 있다.
  • 고통 받는 영국의 가톨릭을 위해..
  • 1639년 5월 20일에 저는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조극은 여전히 신앙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죠. 정말 마음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 고마운 친구들..
  • 영국에서의 친구들은 저를 환영하였습니다. 제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저를 지지해주었답니다.
  • 하느님 품으로..
  • 1645년 1월 12일 저는 심한 통증을 느꼈고, 1월 30일 아침 동료들은 침상 가까이로 불렀습니다. '성소에 성실하고, 성소를 끝까지 지키며, 사랑으로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왜 슬퍼합니까? 슬퍼하지 말고 함께 노래를 부르세요.' 그리고 오전 11시 15분경 저는 십자가에 세 번 입을 맞추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 후 하느님 품으로 갑니다.
  • 온 세상으로 나아가라!
  • 메리워드가 세상을 떠난 후에 수도회는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와 같았으나 그 나무에서 새가지가 돋아나기 시작하였고, 꾸준히 자라났습니다. 발바라 밥도르프가 메리워의 유언에 따라서 수도회를 이끌었습니다.
  • 여성들은 여성들이 통솔하도록 하라!
  •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1749년 여자 수도회의 총장제도를 허락하셨으나 아욱스부르크의 주교 요셉 1세의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 창립자로
  • 베네딕드 14세는 메리워드를 창립자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190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비오 10세에 의하여 이러한 금지사항이 해제되고, 메리워드가 수도회 창설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 수도회 회헌
  • 1978년 12월 22일에 예수회 회헌 일부를 수도회의 토대로 채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헌은 수도회의 사도적 삶의 기초입니다.
  • 찾았다 우리 이름
  • 2002년 수도회 총회에서는, 메리워드가 수도회를 창립할 때 하느님의 은사라고 확신한 대로 성 이냐시오의 회헌 전체를 수도회의 고유법으로 채택하고, 수도회의 이름도 예수님의 이름을 갖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예수수도회
  • 2003년 6월 7일 수도회는 교황청 수도회성으로부터 이 결정을 모두 인준받기에 이르렀습니다.
  • 하느님의 때!~
  • 수도회를 위해 메리워드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은사가 드디어 완전히 실현된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하느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믿으며 고난 속에서도 오직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기를 열망했던 메리워드는, 오늘날에도 이웃과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용감한 여성들을 격려하며 함께 순례의 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메리워드의 기도"
  • 주님, 주님은 저의 마음을 아시나이다. 저의마음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완전하게 해 주소서. 저의 마음은 준비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저를 보내주소서. 저는 주님 손 안에 있나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저를 변화시켜 주소서. 저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는 주님의 종입니다. 아멘."